본문 바로가기

번역의 세계/좋은 책과 리뷰

칼의 노래



인간 이순신, 군인 이순신, 아버지 이순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라는 비극 속에서 오직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1인칭 시점과 서정적으로 표현된 작가의 문체는 내가 당시의 사람으로서 전쟁을 겪고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장군의 전략이나 전술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를 둘러싸고 있었던 국제정세, 정치상황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중심으로 왜놈들은 ‘명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명분으로 바다를 건너 조선을 침범한다. 유약하고 어리석은 조선의 왕은 당파싸움의 중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대비하지도 못한다. 결국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 침략의 길을 열어준 이들은 권력과 안위만을 챙기려했던 우리 내부의 왕과 썩은 관료들이었다. 왜놈들을 향한 증오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조선의 왕과 매국노와 다름없는 썩은 관료들을 향한 증오가 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결국 수많은 백성들을 아비규환 속에서 전쟁의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렸다. 적의 포로가 되고 적의 기생이 되고 적의 군사와 노예가 되어 죽어간 수많은 조선의 백성들. 부모와 자식과 배우자의 시체를 뜯어 먹는 전쟁의 참혹함. 이 참혹한 전쟁과 지옥으로 빠뜨렸다는 역사적 책임에서 그들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의병을 일으키고 공을 세우고 백성을 구한 영웅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전력의 차이를 극복하며 모든 해전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이순신 장군은 왕의 권위에 도전하고 때로는 나라를 뒤엎으려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음모로 백의종군의 길로 나서게 된다. 결국 경상, 전라, 충청을 아우르는 삼도 수군의 전력은 우매한 ‘원균’의 지휘로 칠전량 에서 수장 당하게 된다. 조정은 자신들이 옥에 가둔 이순신 장군을 다시 복귀 시킨다. 이 얼마나 비열하고 줏대 없는 없는 왕과 그 수하들인가? 권력에 눈먼 치졸한 지도자들이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주범이라는 사실과 400년이 지난 지금의 형국 또한 그때와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역으로 한사람의 영웅이 나라와 백성을 구한 것이다.

 

도요토미가 오사카의 이슬로 사라진 후 일본은 전쟁의 명분을 잃어버리고 전쟁에 참가한 가신들의 봉토 획득도 불분명해졌다. 이와 더불어 조선을 지원하기로 한 ‘명’은 정치적으로 일본과 묘연의 계약을 한다. 조선의 국토를 나누어 갖자는 두 오랑캐의 간사한 밀약. 이 또한 두 오랑캐를 향한 증오보다 나라를 그 이끌어가며 고루한 학문에 집착하며 백성보다 관료의 권력을 중요시 여긴 당대의 썩은 정치인들을 향한 증오가 더욱 크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책을 연 이후 책을 덮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문체를 이해하는데 다소 힘이 들었지만 영웅 이순신의 내면을 서정적으로 잘 그려낸 소설이다.

 

이순신의 마지막 해전인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달아나는 왜군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불쌍하고 비참하게 죽어간 수많은 조선 백성들의 넋을 위로하고 왜놈들이 다시는 조선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쇄기를 박는 듯 ‘명’의 정치적 음모와 명의 신하를 자처하는 조선 왕의 무기력을 뒤로한 채 오직 조선의 장군으로서 마지막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낸다. 자신 또한 바다를 자신의 죽을 자리로 만들었다.

 

이 책은 임진왜란과 관련한 전쟁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 이순신을 그려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순신의 내면을 통해 당시의 역사, 시대적 상황, 정치,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증오하는 왜놈들의 조선 침략.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가치와 명분을 가지고 전쟁을 정당화했다. 그 정당화에 눈과 귀가 멀어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했다. 2차 대전 일본의 침략전쟁, 조선의 식민지화 . 이들은 때로는 정치적 정당성을, 때로는 국가의 이념을, 때로는 종교를 이용해서 더 많은 권력과 영토를 확장하려 하였다. 피해자는 결국 우리와 같은 약소 국가였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일본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고, 그들로부터 진실한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일본의 관료들은 400년 전과 다를 바 없이 망언을 내 뱉으며 정치적, 민족적 침략을 여전히 일으키고 있다. 정말로 분통한 일이다.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국민을 우선으로 두는 대통령이 이번 대선을 통해 나오면 좋으련만...

서로 물어뜯고 싸우며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끝까지 고수하는 모습, 비리로 얼룩져 있는 지금의 정치는 400년 전과 무엇이 다를까? 


'번역의 세계 > 좋은 책과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빈치 코드  (0) 2009.04.08
부의 비밀  (0) 2009.04.08
뿌리깊은 나무  (0) 2009.04.08
운명  (0) 2009.04.08
나무  (0) 2009.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