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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Useful Expression

동문서답-안정효 선생님의 Q-English

[안정효의 Q-English]동문서답이 던져주는 재미
입력: 2008년 08월 20일 15:21:57
막스 브러더스 영화 ‘풋볼대소동’의 신임 총장 취임식 장면에서 그라우초 막스에게 아들 제포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Dad, let me congratulate you. I’m proud to be your son.”(아빠, 축하를 드리고 싶군요. 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그라우초가 즉석에서 quip한다. “My boy, you took the words right out of my mouth. I’m ashamed to be your father. You’re a disgrace to our family name of Wagstaff.”(얘야, 넌 내 심정을 정말로 정확하게 표현했어. 난 너 같은 아들을 두어서 창피하거든. 넌 우리 왝스태프 가문의 수치야.)

take the words right out of one’s mouth는 매우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내가 할 말을 내 입에서 네가 빼앗아가서는 대신 말했다”는 의미다. “내가 할 말을 네가 속 시원하게 다했다”거나 “네가 그렇게 말하니 난 할 말이 없어졌다”는 식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두번째 문장은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기를 서슴지 않는 slapstick의 전형적인 quip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넘쳐나는 이른바 ‘네거티브’(smear campaign이 정확한 영어표현임)나 마찬가지로, 실생활에서는 가급적 삼가야 하는 공격적 표현이다. 세번째 문장에 나오는 이름 Wagstaff는 staff(선생님이 교실에서 사용하는 막대기)를 손에 들고 개의 꼬리처럼 wag(삿대질을 하듯 좌우로 흔들다)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어떤 종류의 가문인지 쉽게 이해가 되겠다.

그라우초 총장과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던 델마 토드가 황홀한 마음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I would go on like this, drifting and dreaming forever. What a day. Spring in the air.”(꿈을 꾸며 떠내려가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어요. 황홀한 하루예요. 하늘에는 봄기운이 가득하고요.)

drifting and dreaming은 물론 두운이며, 세번째 문장에 나오는 in the air의 번역 때문에 필자는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여기에서처럼 air를 ‘하늘’로 번역하면 쉽게 해결이 나는 경우가 많다. on the air는 ‘방송중’이고, on air는 ‘쾌활하게’다. 몽상에 빠져 토드의 말 끝마디만 들은 그라우초가 동문서답을 한다. “Who, me? I should spring in the air and fall into the lake?”(나더러 말인가요? 공중으로 튀어올랐다가 호수로 떨어지라고요?) spring은 계절로는 ‘봄’이요, 기계공은 ‘용수철’로 사용하고, 동사가 되면 용수철처럼 ‘튕겨오른다’다.

치코와 하포가 방에 갇히자, 치코는 마루바닥을 톱으로 동그랗게 뚫고 탈출하려다 우당탕 아래층으로 떨어진다. 무색해진 치코가 하포에게 pun으로 quip한다. “Well, partner, I think we made a grand slam.”(보라구, 여보게, 우리가 대성공을 거두었지.)

멀거니 번역하면 이렇게 하나도 우습지 않지만, 원문의 맛은 다르다. grand slam은 브리지놀이에서의 ‘압승’, 야구에서의 ‘만루 홈런’, 그리고 골프나 정구나 스키에서 주요한 대회를 모두 석권(싹쓸이)하는 경우를 뜻하고, 구어로는 ‘대성공’이라는 말로 통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고, ‘와장창 큰소리(grand slam)’만 내며 떨어져 아래층 방에 다시 갇히고 말았다. 반어적 pun의 quip이다.

speakeasy(미국 금주법 시절의 무허가 비밀 술집)의 주인이 문지기로 취직한 치코에게 지시한다. “Don’t let anyone in without the password. Swordfish is the password.”(암호를 모르면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암호는 ‘황새치’야.)

술을 마시러 찾아온 그라우초가 peephole(문에 뚫린 구멍)로 들여다보며 출입시켜달라고 부탁하자 치코가 암호를 대라면서 슬쩍 도와준다. “I’ll give you a hint. It’s the name of a fish.”(힌트를 주지. 암호는 물고기 이름이야.)

‘힌트’는 우리말로 무엇일까? cigar가 우리말로 ‘여송연’이라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이 몇명이나 될까? 옛날옛적 우리나라에서는 tennis를 ‘테니스’라 하지 않고 ‘정구’라고 했으며, handball은 ‘핸드볼’이 아니라 ‘송구’라고 말하며 창피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라우초가 귀띔(힌트)을 살려보려고 노력한다. “Is it Mary?”(메어리인가?) “That’s no fish.”(그건 물고기가 아냐.) “Yes, she is. She drinks like one.”(왜 아냐? 메어리는 물고기처럼 마시는데.) drink like a fish는 우리말로 “고래처럼 마신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술고래’는 그냥 ‘고래’나 마찬가지로 물고기가 아니라 포유동물이다.

그라우초 총장이 기숙사를 허물어버리라니까 다른 교수가 묻는다. “Where will the students sleep?”(그럼 학생들은 어디서 잠을 자나요?) “They always sleep in the classroom.”(공부시간에 항상 잠을 자니까 상관없어.) 축구시합 중에 여송연(시가)을 피우는 그라우초 총장에게 심판이 불평한다. “What are you doing with that cigar in your mouth?”(여송연을 입에 물고 뭐하는 겁니까?)

“Why, do you know another way to smoke?”(왜 그래? 입에 물지 않고도 여송연을 피우는 다른 방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래도 ‘풋볼대소동’을 그냥 “엎치락뒤치락하는 저질 코미디”라고 깔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