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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Useful Expression

야릇한 뒷맛 남는 인체결말-안정효 선생님의 Q-English

 
Q-English]야릇한 뒷맛 남는 인체 곁말
입력: 2008년 10월 22일 14:48:09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어느 장면을 보면 바닷가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자에게 숀 코너리가 능글맞게 말한다. “There’s something I’d like to get off your chest.” 

참으로 아리송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have(=get) ~ on one’s chest(~을 가슴에 얹어놓다)는 구어로 “마음에 걸리다” 또는 “~을 부담스럽게 여기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off one’s chest라면 “마음에 걸리던 ~를 훌훌 털어버리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예문은 “당신 마음에서 털어내고 싶은 무엇이 있는데”라는 뜻이어서, “당신에게 무언가 듣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말로 풀이가 된다. 

하지만 엉큼한 코너리의 사전에서는 틀림없이 “당신 가슴에 얹힌 무엇, 즉 브래지어를 벗겨보고 싶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된다. 007은 여자의 브래지어를 풀어서 목을 조이며 정보를 대라고 다그친다. 여자로서는 참으로 좋다가(?) 말았다.

같은 영화에서 얼핏 지나가는 장면인데, 도박장에서 “나한테 카드를 달라”는 뜻으로 어떤 손님이 “Hit me”라고 했더니, 뒤에서 어떤 남자가 덮쳐 주먹질(hit)을 한다. 자신의 브래지어로 목이 졸리는 여자만큼이나 황당한 처지다.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에서는 마이크로필름을 사겠다는 제임스 본드에게 늘씬한 소련 여첩보원 트리플 X를 가리키며 이집트 술집의 주인이 능글거린다. “It seems you have a competition, Mr. Bond, and I fancy you’ll find the lady’s figure hard to match.”(보아하니 당신한테는 경쟁자가 생겼는데요, 본드씨, 내가 보기엔 아가씨가 제시하는 액수를 당신으로서는 당하기가 어렵겠는데요.) 

figure는 돈의 ‘액수’라는 말이지만, 이 경우에는 곁말로 여성의 ‘몸매’를 암시한다. 만일 여첩보원이 몸(figure)을 제공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아무리 많은 액수의 돈(figure)을 제시하더라도 남자인 코너리로서는 match(경쟁상대)가 되기 어렵다. 예문에 등장하는 동사로서의 fancy는 ‘몽상하다’라는 뜻이어서 이런 야릇한 상황에 잘 어울리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여기에서 생략된 that을 뒤에 받아서) think나 presume 또는 suppose 대신 자주 쓰이고는 한다. 

<네트워크(Network)>에서는 출세밖에 모르는 냉혈 여인 페이 더너웨이가 야심찬 계획을 설명하고 나서 정부(情夫) 윌리엄 홀든이 별로 신통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I don’t think you fancy my suggestions”(내 제안을 신통치 않다고 생각하는 눈치구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fancy가 단순히 “좋아하다” 또는 “마음이 끌리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인체에 관한 곁말의 야릇한 뒷맛을 조금 더 음미하겠다면, <성탄절에 생긴 일(A Christmas Story)>에서, 벌거벗은 여자의 다리처럼 생긴 전등을 상으로 탄 아버지가 그것을 자랑스럽게 창가에 내놓은 다음에 주인공이 해설하는 말을 들어보라. “The entire neighborhood was turned on.” 

“온동네가 turned on”했다는 얘기인데, turn(ed) on이 여기서는 참으로 종잡기 어려운 뜻이다. 우선 온 동네가 “환해졌다(=불을 밝혔다)”는 뜻이 성립된다. 전등이 길거리까지 비추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발기하다’라는 뜻도 유효하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동네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야릇하게 빛나는 나체 여성의 하반신을 보게 되었으니 신체적인 반응이 ‘일어날’만도 하겠다. 

<그리프터스(The Grifters)>는 약간 끔찍한 인체 곁말을 선보인다. 술집 같은 곳에서 쩨쩨한 사기만 치다가 깡패들에게 걸려 배를 심하게 얻어맞고 장파열로 입원했던 존 쿠색에게 두목의 돈까지 잘라먹을 만큼 간이 큰 안젤리카 휴스턴이 비아냥거린다. “You haven’t got the stomach for it.”(넌 그런 일을 할 만한 배짱이 없어.) 

물론 여기에서는 장파열을 일으킨 배(stomach)를 빗대어서 한 곁말이다. “그런 일을 하려면 (파열이 되지 않을 만큼) 뱃가죽이 훨씬 든든해야지”라는 소리다. 

<흑수선(Black Narcissus)>에서는 낮은 직책을 받아 다른 수녀원으로 가게 되었다는 분원장 데버러 커에게 족장의 대리인 데이빗 파라가 stomach을 걸고 빈정거린다. “Will you be able to stomach that? Stiff-necked, obstinate creature like you?”(당신이 그걸 참아낼 수 있을까요? 당신처럼 완고하고 독선적인 사람이?) stiff-necked는 우리말로 “목이 빳빳한”이나 “목에 힘주는”이라고 직역하더라도 뜻이 잘 통한다. 

데버러 커는 <비수(悲愁, Beloved Infidel)>에서 그레고리 펙(=<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 역)에게 먼저 사귀던 남자에 대해서 “I cannot stomach Donegal”이라고 말한다. “도네갈 그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다”는 뜻인데, stomach은 이렇듯 목구멍으로 일단 넘긴 다음 뱃속에서 무사히 받아주느냐 아니냐 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소화가 잘 된다.

<안정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