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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Useful Expression

의도하지 않은 음담패설-안정효 선생님의 Q-English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이 원작인 희극물 <아바나의 첩보원>(Our Man in Havana)에서 대책없는 알렉 기네스를 첩보원으로 발탁했다가 낭패를 본 영국 정보부가 고민에 빠지고, 직원 노엘 카워드는 랄프 리처드슨 국장에게 이런 보고를 한다. “Loss of those two, sir, will create a little vacuum.”(그 두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국장님, 공백이 좀 생기겠군요.) 

국장이 그를 빤히 쳐다보자 카워드가 당황해서 재빨리 사과한다. “I’m most frightfully sorry, sir, I haven’t really intended to make a pun.”(굉장히 끔찍하게 죄송합니다, 국장님, 정말이지 전 말장난을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카워드가 난처해진 까닭은 그들이 실수로 포섭했던 엉터리 사기꾼 첩보원 기네스의 직업이 vacuum cleaner(진공청소기) 판매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우발적인 우연의 일치에 의해서 계획하지 않았던 웃음을 자아내게 되는 상황을 unintended joke(의도하지 않은 농담)라고 한다. 때로는 이런 뜻밖의 실언이 상대방에게는 대단한 모욕으로 전해지기도 하니까 조심해야 한다. 

이런 unintended joke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한국 여성이 해외여행을 하느라고 출입국관리소에서 서류를 작성하다가 ‘sex(性別=gender)’라는 항목을 보고 냉큼 적어 넣었다. “Twice a week.”(일주일에 두 번.) 

혹시 재수가 좋아서 상대방이 호응을 하는 경우에 수작을 걸어보려는 엉큼한 떠보기 속셈으로 sex(ual) joke(성적인 주제를 다룬 농담)를 하는 치사한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그런 사람(특히 남자)들이 은근한 음담패설을 할 때는, 거절을 당하더라도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너무 야해서 역효과를 자극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조심하는 태도로 내던지는 음담패설은 intended joke(계산된 농담)에 속한다. 

그런 농담에서는 nuance(미묘한 뒷맛)가 복잡한 얼개 속으로 잠복하는 어려운 화법이 진가를 발휘한다. 암시적인 요소가 강한 nuance와 비슷한 화법인 innuendo(비꼬기)는 “무엇인가를 암시하기 위해 머리를 끄덕인다”는 뜻의 라틴어 innuere에서 파생한 단어로서, 부정적인 측면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빈정거림’을 의미한다. innuendo와 비슷한 insinuation(넌지시 비치는 암시)은 누군가의 호감을 사거나 모함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다. 단어의 한가운데 박힌 sin의 의미를 참조하기 바란다. 

sin과 동족인 crime(범죄)으로부터 파생한 incrimination(죄를 씌움)은 insinuation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모함하려는 의도적인 적대행위다. 그리고 법정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self-incrimination은 증언 따위를 잘못해서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는 경우”를 뜻한다. 

지금까지 소개한 어휘군과 모양이 퍽 비슷한 intimation 역시 ‘넌지시 비춤(hint)’을 뜻하는데, intimate(친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귀띔’을 연상하면 되겠다. 영화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과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에서 주인공들이, 그리고 필자를 포함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암송하는 윌리엄 워즈워드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시는 제목이 <어린 시절 추억의 불멸성이 남긴 자취(=흔적·intimations)에 대한 송가>(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다. 

어휘력키우기(proliferation)에 열중하다 보니 얘기가 삼천포까지 흘러와버리고 말았는데, 아무튼 엉큼한 작업을 거는 화법이라면 007 제임스 본드를 누가 당하랴 싶다.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에서 숀 코너리는 훔친 카세트 테이프를 질 세인트 존의 비키니 아랫도리 엉덩이에 몰래 찔러 넣으며 능글맞게 말한다. “Your problems are all behind you, you know.”(당신의 모든 골칫거리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알겠죠?) 

무엇인가를 “behind(뒤)에 남겨둔다”는 말은 흔히 고민거리 따위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하자”는 암시를 담은 표현인 경우가 많다. 가수 재니스 조플린의 일대기를 그린 <로즈>(The Rose)에서 마약을 주사한 자국이 팔에 없다고 보여주는 베트 미들러에게 기획자 앨런 베이츠가 “That’s all behind us, see?”라고 한 말은 “그건 우리에겐 모두 과거지사야, 알겠지?”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코너리의 엉큼언어로는 behind you가 “당신 궁둥이에 붙었다”는 뜻이다. behind는 완곡한 구어로 ‘엉덩이(뒤쪽)’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마 레이>(Norma Rae)에서는 흙장난하는 아들을 샐리 필드가 이렇게 야단친다. “Look at your behind. Dirty.”(네 엉덩이 좀 봐. 더럽잖아.) 007 엉큼언어는 다음주에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