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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Useful Expression

같은 뜻 다른 의미-안정효 선생님의 Q-English

[안정효의 Q-English]같은 뜻 다른 의미
<겨울의 끝(Sarah, Plain and Tall: Winter’s End)>에서 처자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다가 죽음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온 잭 팰런스는 난생 처음 보는 손녀에게 묻는다. “What is your father’s name?”(아버지 이름이 뭐니?) “Papa”(아빠요).

서양에서는 가족 간에 명칭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father의 이름이 귀에 익은 호칭 Papa라고 오해한 손녀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기야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별명이 Papa Hemingway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Papa처럼 고유명사인지 보통명사인지 헷갈리는 단어를 일부러 배합한 묘기는 <애정이 꽃피는 양지(A Hole in the Head)>의 예고편에 나오는 유명한 선전문 “Very Frank Capra Look at Life!”에서 발견된다.

이 영화에서는 Frank Capra가 제작과 감독을 맡았다. 그래서 선전문을 아무 생각도 없이 읽으면, very Frank Capra look(그 유명한 프랭크 캐프라의 시각)이 된다. 하지만 Frank를 소문자로 바꿔 very frank Capra look이라고 가정했을 때는, “아주 솔직한 캐프라적 시각”이 된다.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정신없는 광고문이다.

위의 두 가지 해석의 경우에는 Frank가 고유명사 Francis의 애칭인가 아니면 형용사 frank(솔직한)인가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는데, 광고문안의 Frank가 대문자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느 쪽인지 가려내기가 힘들다.

잠깐,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공부를 하나 하고 지나가자. 광고 문안뿐 아니라 영화나 소설 및 논문 등의 제목에서 도대체 어떤 단어를 대문자로 시작하고 어떤 단어는 소문자로 시작해야 되는지를 학교나 학원에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원칙은 알고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소유격을 포함한) 모든 명사와 대명사, 형용사와 부사처럼 비중이 큰 단어는 대문자로 시작한다. 접속사와 전치사 그리고 관계사와 의문사처럼 부속적인 성격을 지닌 단어는 Whereupon이나 Throughout처럼 네 글자가 넘는 경우에만 대문자로 시작한다. 네 글자인 경우에는, 예를 들어 from이나 From처럼, 두 가지 모두가 맞지만, 관사는 꼭 소문자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첫 단어는 품사에 관계없이 항상 대문자로 시작된다.

원제에서 쓰인 hole in the head(대갈통에 뚫린 구멍)라는 표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말 한심한 무엇”을 의미하는데, 역시 감칠맛이 느껴지는 멋진 표현이지만, 교과서와 입시학원에서 경직된 표현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퍽 생소하게 느껴지리라고 생각된다. 

<양키 두들 댄디(Yankee Doodle Dandy)>에서 연예기획사를 함께 경영하는 친구를 도와주라는 아내에게 제임스 캐그니가 코웃음을 친다. “He needs me about as much as he needs a hole in his head.”(그 친구한테는 내가 발가락에 낀 때만큼도 필요하지 않아.)

그리고 hole in the head의 변형된 용법이 <밀드레드 피어스(Mildred Pierce)>에 등장한다. “자동차를 사 주면 내 딸이 좋아하겠느냐”는 조운 크로포드의 질문에 함께 식당을 경영하는 이브 아덴은 이렇게 대답한다. “If she doesn’t, she ought have her head examined for a hole.”(좋아하지 않는다면, 걔 혹시 머리에 구멍이나 뚫리지 않았는지 병원에 가서 진단이라도 받아야 할걸.) “미쳤어도 단단히 미쳤다”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frank look(솔직한 시각)의 frank는 어떤 솔직함일까? 그것은 예를 들면 honest look이나 candid look 또는 truthful look과 어떻게 다른 시각일까? 사람들은 우리말로 ‘솔직한’이 하나의 단어이니까 영어로도 ‘솔직한’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하나뿐이라는 잠재의식적인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왜 위험한 생각인지 설명하겠다.

<거짓 속의 진실(Wrong Is Right)>에서 로벗 웨버 국장이 야당 대통령 후보 레슬리 닐슨을 지지한다고 털어놓자 언론인 숀 코너리가 코웃음을 친다.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 이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칼렛 오하라를 버리고 떠나며 렛 버틀러가 남긴 명대사의 quotation(인용)이다. (당신의 불행 따위는) “솔직히 얘기해서 난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이 내용은 화자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면이 가미된 시각을 frank라는 단어로 나타낸다.

반면에 honest(정직한)는 비교적 소극적인 수비에 가까운 개념이다.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에서 전직 보석 도둑 캐리 그랜트가 로이드 보험회사 간부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자. “In this business, you can’t do things the honest way. Remember that.”(우리 사업에선 정직한 방법으로 해선 되는 일이 없어요. 그걸 잊지 말라고요.)

그런가 하면 candid는 ‘노골성’으로 기울고, truthful은 ‘진실성’으로 기운다. 따라서 이들 네 단어는 우리말로 같은 뜻이기는 하더라도 영어로는 서로 의미가 다른 단어가 된다. candid와 truthful 두 단어의 예문은 지면 관계상 다음주에 제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