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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좋은 책과 리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푸른숲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영화 개봉일을 확인해보았다. 2006년 9월.
이 영화를 본지 어언 3년 이상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이 영화의 감동, 이 영화의 느낌은 무뎌지고, 스토리조차 희미해졌다. 
분명, 영화 내내 가슴 시리고 남자라는 이유로 속으로만 울어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나건만.

그래서 누군가 주장한 것으로 기억나는, 정석적인 방법을 처음으로 실행해보았다. 영화를 보고, 그 다음 원작을 책으로 읽는 것. 그 반대로 하는 것이 정석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책 장에 꽃혀 있는, 어떤 경로로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그저 집어 들었다.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주인공의 심리 흐름을 묘사하기는 불가능했을터. 영화는 이 책의 핵심 스토리를 바탕으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데 그쳤으리라. 영화가 1%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와 두 인물의 심리묘사, 우리가
생각해야 할 삶과 행복, 가치, 절망 등 작가가 화려한 필체로 묘사한 모든 것들은 두 시간 짜리 영화로 완전히 표현하기는 불가능했으리라는 뜻이다. 

상처 입은 영혼 유정.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 당한 15살 소녀. 나이 서른이 넘도록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인.
자신의 상처를 나몰라라하고 숨기려 했다 여겨 엄마를 몹시 증오한 딸 
유학파 교수지만 세상을 비관하고 절망에 빠져 수 차례 자살을 시도한 여자.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곳에 굴곡진 짧은 생을 살수 밖에 없었던 윤수라는 남자가 있었다.
부모에서 버림받고 세상에 버림받고 고아원과 소년원을 들락거리며,
눈먼 동생 은수만큼은 지키려 했던 남자.
그러다 차디찬 세상 바닥에서 누워 자신의 품에서 동생을 떠나보낸 뒤, 
처음으로 한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된 남자.
그 여자와 자신의 아기를 살리기 위해 돈 3백만원을 구하려 했던 남자.
그 3백만원을 구하려다 마지막 한탕에 빠져 결국 처절한 운명의 기로에 섰던 남자.
부녀자 살인범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희생자들에게 칼 한번
휘두르지 않은 남자. 
그러고도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남자. 
하지만, 죽기 직전까지 모니카 고모와 유정에게서 희미한 삶의 희망을 아주 잠시나마
느끼고 떠난 남자. 

짧디 짧은 사형수의 삶을 마감하며 윤수는 유정의 트라우마를 치유하였다. 

세상이 손가락질 한 사형수.
그 사형수의 이면에는 그를 살인하지 않은 살인자로 내몬 수많은 가해자가 있었고, 인정없고 모진 사회가 있었다. 
그리고 유정이 있었다. 어쩌면 그 모두가 사형수였다. 
서로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차츰 서로의 본질을 알고 서로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갔다. 
윤수는 죽음을 맞고서야, 죄질이 심한 사형수를 묶는 혁수정을, 그리고 그 혁수정만큼 삶을 옭아맨 상처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유정 역시 정신적 충격과 세상에 대한 분노, 절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리라.

그 짧은 시간, 유정과 윤수는 서로를 통해 인생에서 처음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삶과 행복, 희망과 절망, 이런 화두는 이 책을 읽었다하여 명확이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차이와 그 경계를
더욱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또한 두 인물을 통해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자신의 상처에 대한
기억이 증폭되어 더더욱 두 인물의 감정을 공유하고 그 아픔 속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과거의 상처에 눈물이 날지언정 책장을 덮는 순간 두 인물이 지속하지 못한, 아니 한 인물이 지속하지 못한, 
아니면 한 인물은 이승에서 한 인물은 저승에서 지속할 '행복한 시간'을 향한 희망이 샘솟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