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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좋은 책과 리뷰

대위의 딸, 알렉산드르 뿌쉬낀, 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러시아 사람들이 기꺼이 <자신들의 모든 것>이라고 부르는 거인 알렉산드르 뿌쉬낀의 유일한 장편소설 대위의 딸을 집어들었다.  이책은 전제군주를 향한 뿌가초프의 반란을 소재로 주인공 뾰또르 안드레이치의 내면과 대위의 딸 마리야 이바노브나에 대한 사랑을 책 소개에서 말하듯 가볍고 희극적인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뿌가초프가 과가 자신이 토끼털 외투를 벗어주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부랑자였다는 사실, 그 인연 덕분에 성이 함락되고 사령관 이반 꾸르미치와 그 부인 바실리아 예고르브나가 반란군에게 비참하게 살해되었어도 뾰도르는 오히려 참칭관 뿌가초프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 마리아와 자유로운 몸이 된다. 이후 뿌가초프가 결국 여제의 군사에 패하여 처형당한 이후에 마리아에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한 이후 반란군의 편에 서서 뽀또르를 음해하고 뿌가초프가 처형당한 이후에도 그를 음해함으로써 뾰또르는 다시 반란자의 편에 섰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뾰또르를 살리기 위해 여제에게 찾아간 마리아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여제는 마리의 말을 믿고 뾰또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해준다. 


한 편의 수기로서 끝을 맽는 이 책이 실제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지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스토리만 봐서는 여느 심파극, 남녀의 사랑을 다룬 진부한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이고 문학이라는 측면에서 스토리보다는 소설 전편을 흐르는 가볍고 희극적인 어조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점에 집중해서 책을 읽다보면 러시아 문학의 특징을, 문학에 문외한 사람으로서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제 군주 시대의 러시아, 당시의 시대상, 그보다는 당시 러시아 사람들의 내면, 몇 백년이 흐른 지금, 지금의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 연인에 대한 그림움, 감정이 어떠한지,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남녀 간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문학과 고전을 읽는 것은 사람, 인간에 대한 지혜와 철학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습득하는 즐거움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만에 읽은 문학, 거의 처음 접했다고 할 수 있는 러시아 문학, 러시아 최고 시인이 쓴 유일한 소설을 읽은 감회를 감명 깊게 느낀 한 구절을 다시 표현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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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처벌, 이것이 한 때 우리 시대에 일어났음을 돌이켜 볼 때,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알렉산드르 황제의 온화한 통치 하에 있음을 상기할 때 나는 문명의 급속한 발달과 박애주의적 법규의 확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이여! 만일 나의 이 수기를 읽게 된다면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보다 훌륭하고 항구적인 개혁은 일체의 폭력적 강요를 배제한 풍속의 개선으로부터 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