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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좋은 책과 리뷰

난 슈퍼맨이야" 할때 "넌 헛똑똑이야" 되더라


난 슈퍼맨이야" 할때 "넌 헛똑똑이야" 되더라
똑똑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美 심리학자 15인의 연구
 
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할까

로버트 스탠버그 등 지음ㆍ이영진 방영호 옮김

21세기북스 발행ㆍ328쪽ㆍ1만3,000원

성 관계는 없었다는 거짓 증언이 나왔다. 국민을 속인 그의 거짓말은 계속됐을 뿐 아니라 증인들에 대한 위증 압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거짓말은 DNA 검사로 뒤집어졌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야기다. 똑똑한 사람은 제 꾀에 넘어가는 것일까?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체 남성의 23%, 여성의 12%가 혼외 정사를 경험했다(물론 미국이다). 그렇듯 흔한 일인데, 똑같은 행동을 한 클린턴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한가?

<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할까>의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해 미국인들의 심각한 위기의식을 읽는다. 국민의 78%가 미국의 도덕적 가치가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클린턴 스캔들은 개인의 자유를 너무 소중히 했던 가치관에 대한 반성일 개연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간통, 위증, 공무집행방해 등 그의 혐의를 밝힌 것이 일개 특별검사의 공은 아니다. 클린턴의 정책에 불만이 많았던 부자들이 그의 스캔들을 세상에 폭로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는 “성관계에 대해 ‘기술적인 정확한 정의’를 사용하여 르윈스키와의 애정 행각을 부인한”(61쪽)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쉽게 말해 너무 똑똑하고 자신이 만만했다. 조사가 시작됐을 때 재빨리 잘못을 시인했더라면 그처럼 참담한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와 교육 문제에서 업적을 이뤄 호평받고 있었던 그가 왜 무덤을 팠을까? 그는 말하자면 ‘헛똑똑이’였던 셈이다.

인지심리학과 응용심리학 분야에서 각기 일가를

이룬 미국의 심리학자 15명이 똑똑한 자의 멍청한 짓에 대해 연구했다. 똑똑한 사람들은 유혹과 자기파괴적 충동으로 내모는 감정 상태를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멍청한 행동을 하게 된다. 책에서 말하는 바 헛똑똑이다. 지능이 높으면 신경증을 억제하기 힘들고, 신경증이 높으면 지능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 지능과 성격의 연관성은 낮다는 추론(166쪽)이 그래서 가능하다. 인지과학은 “현실적인 합리성과 인지적 불합리성이 공존하는 현상”(274쪽)을 인정한다.

이 연구는 일단 미국의 경우다. 연구자들은 헛똑똑이들이 나타나는 최대의 원인으로 노력하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미국 사회를 꼽는다. 그것은 지능이란 고정됐고, 노력이란 무능력자에게만 필요하다는 믿음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현실적으로는 권력과 정보가 집중되면서 자신이 전지전능하며 천하무적이라는 생각이 기득권자를 망친다. ‘암묵 지식’ 이론이다.

저 같은 “당혹스런” 현상을 저자는 ‘정보 투영 이론’과 ‘마테오 효과’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전자는 새 정보에 기존의 주관이나 신념을 투영해 보다 빨리 자기 안에 축적한다는 이론이고, 후자는 조기교육 경험을 쌓은 사람이 새로운 교육 내용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우위를 누리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들 이론은 인간의 이해가 왜 편향적인가를 설명해 주는 계기가 된다. 합리적인 사람이 유독 특정 영역에서 그릇된 신념을 투영, 결과적으로 기이한 이론을 발전시킨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 모순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가장 미국적 산물인 슈퍼맨이 무의식에 각인됨으로써 큰 폐해를 초래하는 신드롬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미국적 딜레마에 대한 심리학적 지적이다. 충동, 우유부단함, 탐닉 등 갖가지 어리석음이 심리학적 틀로 분석돼 우리의 일상에 내재된 허점들이 나타나는 심리적 기제를 돌아보게 한다. 

출처 :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02/h20090221035722842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