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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Useful Expression

못견딜 정도로 내가 좋아요?-안정효 선생님의 Q-English

형사 콜롬보의 영어 화법에서도 마찬가지지만, sarcasm과 cynicism에서는 논리적인 타당성을 벗어날 정도로 부풀려 덧붙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유리하게 깎아 말하기를 일방적인 편법으로 삼는다. 그리고 부풀리기와 에누리는 둘 다 중심에서 양쪽으로 멀어지는 과장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과장법에서 일반적으로 편리하게 널리 활용되는 단골 기법은 밑으로 내려가는 understatement(에누리, 축소법)와 위로 올라가는 overstatement(부풀리기, 뻥튀기법)다. 어떤 statement(발언, 진술)를 할 때 줄여서(under-) 하면 understatement가 되고, 과장해서(over-) 하면 overstatement가 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기법은 흔히 euphemism(완곡어법)에서 지렛대 역할을 한다.

‘이중노출(Double Exposure)’ 편에서 형사 콜롬보가 광고영화 제작자 로버트 컬프에게 “광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냐고 묻자, 컬프는 정색을 하고 반박한다. “Well, lieutenant, I don‘t make commercials. I’m a motivational research specialist.”(이보세요, 경위님. 난 광고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녜요. 난 동기연구 전문가예요.)

우리나라에서도 일반화된 사회현상이지만, 컬프는 부풀리기 명칭을 써서 신분상승을 도모하는 사람이다. motivational research specialist(動機硏究專門家)라고 컬프가 독창적이고 일방적으로 미화시킨 과대포장 명칭은 “사람들의 동기를 연구하여 광고영화에 그 철학을 응용하는 전문가”라는 의미인데, 그가 하는 일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광고영화 연출가’와 전혀 다른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말에서도 영어로 자신의 직업을 밝히면 신분과 직업이 높아진다는 착각에 따라 ‘미용사’의 호칭을 hair stylist(모발설계사?)라고 바꾸거나 ‘좀도둑질’을 아무리 ‘생계형 범죄’라고 개칭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수행하는 일의 특성과 본질은 좀처럼 달라지는 바가 없다. 생계를 위해 밤잠을 못 자며 고생하는 24시간 편의점 주인을 강탈하는 ‘생계형 범죄’ 행위는 아무리 완곡어법을 써도 ‘날강도질’이다.

에누리와 부풀리기 화법은 그러나 사실을 과대포장하려는 탈현실적인 목적보다 정신적인 여유를 도모하는 데 훨씬 더 자주 동원된다. ‘살인을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Murder)’ 편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건축가 패트릭 오닐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사무실에서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놓는다. 남자 직원이 오닐 사장의 여비서에게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저러느냐”니까 여비서 왈, “He doesn‘t have bad moods. Let’s just say that he is less happy.”(기분이 나빠서 그러는 게 아녜요. 그냥 기분이 덜 즐거워서 그런다고 해두죠.)

bad mood와 less happy는 무게가 똑같아도 느낌이 달라지는 표현이다. “A와 B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단정적인 진술과 “A와 B는 무관하지 않다”는 회피적인 진술을 비교해 보면 그 상대적인 무게의 차이가 쉽게 느껴진다.

이런 표현은 ‘기다리는 여인(Lady in Waiting)’에서 euphemism의 차원에 이른다. 콜롬보가 여송연을 푹푹 피우며 연기를 구름처럼 몰고 미용실로 들어서자 뜻밖의 공해에 난처해진 안내원이 정말 미용실적으로 아름답게 어휘를 가다듬어가며 완곡하게 부탁한다. “The fragrance is not, uh, compatible.”(그 향기가 말이죠, 뭐랄까요, 이곳하고는 비친화적인데요.) 전자 상품이 보편화한 요즈음에는 ‘호환적인’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는 compatible은 이질적인 두 물건이 ‘서로 잘 어울리는’ 경우를 서술하는 형용사다.

무게는 같고 모양만 다른 less의 용법은 ‘마술사의 정체(Now You See Him)’ 편에서도 선보인다. Great Santini(위대한 산티니)라는 이탈리아 이름으로 알려진 마술사 잭 캐시디는 그가 공연하는 카바레에 자꾸 나타나서 어슬렁거리는 경찰관들이 신경에 거슬려 콜롬보에게 불평한다.

“You and your men are snooping around. Now, is there any chance that you could be a little less conspicuous?”(당신과 부하들이 자꾸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잖아요. 당신들이 눈에 좀 덜 띄는 그런 가능성은 혹시 없을까요?) less conspicuous는, 그 속셈을 따져보면, “아예 눈에 안 보이는 그런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여자를 만나 식사하는 곳까지 콜롬보가 쫓아오자 캐시디가 여전히 참을성을 보이며 완곡하게 묻는다.

“Lieutenant, what is it about me that you find so irresistible?”(경위님은 내가 어느 구석이 그렇게 못 견딜 정도로 좋은가요?) irresistible은 남자나 여자가 이성의 매혹에 ‘저항하기 어려운’ 또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겠는’ 상황을 서술하는 형용사로 자주 쓰인다. 그러니까 이 말은 콜롬보더러 “내가 아무리 좋기로서니 그렇게까지 졸졸 따라다닐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둘러대는 화법이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캐시디의 나치 전력을 의심하는 콜롬보가 계속해서 끈질기게 쫓아다니자 캐시디가 묻는다. “Why are so preoccupied to find out my real identity?”(당신은 왜 내 진짜 정체를 알아내려고 그렇게 열심인가요?) preoccupied는 irresistible할 정도로 어떤 대상에 몰두하거나 열중하여 ‘정신이 팔린’ 상태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