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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Useful Expression

RUOK?-안정효 선생님의 Q-English

만화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에서 쐐기벌레가 묻는다. “O-R-U?” 이것은 4Sale이나 I♥U의 경우처럼, 비록 온전한 단어는 아니지만 저마다의 글자가 어휘 노릇을 하는 homophone이다. 이런 기호 표현법은 희극물이나 개인끼리의 서신 그리고 최근에는 인터넷 외계어에서 자주 동원되는 기법이다. 위에서 쐐기벌레가 ORU라고 묻는 말은 “Who are you?”(너 누구냐?)라는 ‘소리’다.

근래 영화로는 「L.A. 스토리(L.A. Story)」가 이 기법을 한껏 활용한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나서 쩔쩔매는 스티브 마틴에게 글자로 말을 걸어오는 길가의 전광판에 이런 ‘암호’가 나타난다. “RUOK?”

마틴은 한참 걸려서야 그것이 “Are you okay?”(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라는 뜻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틴이 전광판에게 대답을 하면서 대화가 이어지고, 전광판은 계속해서 “L.A. WANTS 2 HELP U”(로스앤젤레스는 당신을 돕고 싶어요, L.A. wants to help you)라고 말한다. 전광판은 로스앤젤레스 시에서 관리하는 시설물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사용되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전광판은 마틴을 만날 때마다 “U WILL KNOW WHAT 2 DO”(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당신도 알잖아요, You will know what to do) 따위의 homophone 문자를 열심히 내보낸다. 

그리고 오해와 우여곡절 끝에 빅토리아 테난트와의 사랑에 드디어 성공한 스티브 마틴에게 전광판이 마지막으로 올려주는 글의 내용은 이러하다. “THERE ARE MORE THINGS N HEAVEN AND EARTH HARRIS THAN ARE DREAMT OF N YOUR PHILOSOPHY.”(이 천지간에는 말일세, 해리스, 자네의 철학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많다네.)

이것은 물론 셰익스피어의 <햄릿> 1막 5장에서, 유령을 만난 다음 햄릿이 호레이쇼한테 얘기한 66~67행의 대사를 quotation(인용)한 것이다. 원문과의 차이점이라고는 in을 동음어 N으로 표기하고, Horatio라는 이름을 그와 비슷한 Harris를 바꾼 정도다.

한때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던 텔레비전 연속물 <형사 콜롬보(Columbo)> 가운데 “정객의 범죄(Candidate for Crime)” 편에서는 정서 불안의 치과 의사가 피터 포크의 치아를 살펴보다가 “Too bad”라면서 수선을 부린다. 놀란 형사 포크가 걱정이 되어 묻는다.

“What’s too bad? What do you mean too bad? You mean two bad t-w-o, or too bad t-o-o?”(뭐가 잘못됐어요? 뭐가 그렇게 잘못됐느냐고요? 이빨 두 개가 썩었단 말인가요, 아니면 하나가 너무 심하게 썩었단 말인가요?)

괄호 안의 번역은 물론 two와 too의 동음어를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대기를 한 임시변통의 사례다. 겹말이라는 장애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번역자가 시청자를 위해 영상물 대사의 내용을 어떻게 바꾸면 되겠는지 그 한 가지 가능한 방법을 예시한 것이다.

pun과 double talk의 번역에서는 이처럼 감각과 순발력 그리고 대단한 창의력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다음 경우에는 concrete라는 단어를 어떤 방법으로 번역해야 좋겠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형사 콜롬보>의 “살인을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Murder)” 편에서는 실종된 텍사스 재벌 포레스트 터커를 신도시 건설을 지휘하는 건축가 패트릭 오닐이 살해하여 암매장했으리라고 피터 포크가 의심한다. 그래서 형사 포크는 시체를 찾아내려고 공사장의 콘크리트 기초를 파헤치기까지 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난처해진 형사 포크가 건축가에게 멋쩍은 설명을 한다. “I figure I gotta come up with something concrete.”

I figure는 I think, 즉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군요”라고 꼬리를 빼는 회피적인 말투다. come up with는 “여봐란 듯 내놓다”라는 의미고, concrete는 건축 자재 ‘콘크리트’와 ‘구체적인’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는다. 그렇다면 ‘구체적인’과 ‘콘크리트’라는 겹뜻을 담아낼 만한 하나의 단어는 무엇일까? ‘콘크리트’ 대신 ‘내놓다’를 중복시켜서 필자가 만들어낸 이런 표현은 어떨까? “증거를 못 내놓으면 콘크리트 값이라도 내놔야 할 것 같군요.”

그리고 “나 잡아봐라(Try and Catch Me)” 편에서는 냉혹하고 늙은 여성 추리 작가 루드 고든이 조카사위를 금고에 가둬 살해한다. 조카사위는 질식해서 숨을 거두기 전에 그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쪽지를 숨겨놓은 곳을 알려주기 위해 금고 안에 Y라는 글자를 새겨 남긴다. Y가 무슨 단서를 제공하려는 암호인지를 형사 콜롬보가 풀어내기 시작하자 고든은 그를 헷갈리게 만들려는 마음으로 식 homophone 설명을 보탠다.

“A Y. Maybe it’s a cosmic question Why. Dear Edmund in the safe questioning the meaning of life.”(Y라고요. 어쩌면 그건 ‘왜’냐는 영원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르죠. 금고 속에 갇힌 착한 에드먼드는 마지막 순간에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