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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Useful Expression

좀도둑 해도 좋겠군요?-안정효의 Q-English

피터 포크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텔레비전 연속 추리극 <형사 콜롬보>가 누렸던 폭발적 인기에 대해서는 당시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매회 유명한 배우들이 범죄자로 출연하고, 스티븐 스필버그나 리처드 콰인 같은 명감독이 돌아가며 연출을 맡아, 규모나 짜임새가 어떤 극장 영화(feature) 못지 않게 훌륭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범죄의 구성과 해결 단계를 분리시킨 탄탄한 구조도 시청자를 압도하는 데 분명히 한몫을 했다.

포크가 그려낸 주인공의 인물구성(characterization)은 특히 화제였다. 잠을 자다가 방금 부스스 일어난 듯 후줄근한 옷차림에 새 둥지처럼 헝클어진 머리, 걸핏하면 사고를 일으키는 낡은 자동차와 그가 처음 ‘입장’할 때의 구름처럼 자욱한 여송연 연기, 강력반장답지 않게 어눌한 화법과 입에서 떠나지 않는 아내 얘기, 못생기고 다리가 짧은 애완견…. 누구든지 만나면 “Sir”라는 경칭을 써야 하는 불리한 입장의 약자로 부각된 그는 군림하는 권위가 아니라 친근한 서민층을 대변했다.

그런 어수룩한 수사관이 고상한 상류층의 지능범들을 줄줄이 잡아들이는 과정을 지켜보며 일반 시청자들은 ‘부럽고도 미운 가진 자’를 궁지로 몰아넣는 달콤한 복수의 대리만족을 만끽했다. 하지만 콜롬보의 인기를 확실하게 뒷받침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난 주일에 잠깐 선을 보였던, 그 빛나는 대사의 꼬불꼬불한 묘미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서로 다른 신분이나 계층이 대립하는 얼개에서 약자가 강자에 맞서기 위해 가장 애용하는 무기는 뒤통수를 때리는 풍자(satire)다. 그리고 풍자 중에서도 웃음 속에 가시가 돋아난 sarcasm(비꼬기, 빈정거림)이 특히 효과적이다. sarcasm의 어원인 그리스어 sarkasmos는 “개처럼 살을 물어뜯다”라는 뜻이니, 그 악착 같은 치열함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이 가리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강자의 반격은 지적인 냉소주의(cynicism)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본디 ‘견유주의(犬儒主義)’를 지칭하는 cynicism의 라틴어 어원 키니코스(cynicos)는 “개와 같은”이라는 뜻이어서, sarcasm과 cynicism의 대결은 가히 “개들의 대결” 그러니까 ‘개싸움(鬪犬)’이라고 해도 되겠다. 서로 개처럼 물어뜯는 그런 사례들을 콜롬보 화법에서 잠시 찾아보기로 하자.

<형사 콜롬보>의 ‘마지막 노래(Swan Song)’ 편에서는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콜롬보 경위가 문도 두드리지 않고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오자 짜증이 난 부흥회 가수 자니 캐시가 비아냥거린다. “Lieutenant, if that police career of yours ever fizzles out, you can always make it out as a cat burglar.”(경위 양반, 그 알량한 경찰 생활이 혹시 별 볼일 없어지면, 당장 좀도둑으로 직업 전환을 해도 좋겠군요.)

that은 뒤따라 나오는 of yours(=your ~)와 결합하여 “그따위 알량한”이라고 비하시키는 의미를 나타내고, 의성어 fizzle(s) out(피시식 꺼지다)은 “흐지부지 한심하게 끝나다”라는 뜻이다. cat burglar(고양이 도둑)는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창문으로 살금살금 넘나드는 그런 좀도둑을 가리키는 말인데, ‘순사’를 하필이면 ‘도둑놈’에 비유한 가수 캐시의 원시적 sarcasm에 담긴 공격적 의도가 빤히 엿보인다.

‘완전한 살인의 각본(Make Me a Perfect Murder)’에서는 sarcasm의 차원이 약간 높아진다. 둘러대기의 명수인 콜롬보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다가 그의 꼬치꼬치 질문이 personal(개인적인, 사적인) 내용은 아니라고 발뺌을 하자, 살인 혐의를 받는 여성 텔레비전 연출자가 발끈 반격을 가한다. “Whenever anyone says it’s not personal, that’s exactly when it’s very personal.”(사람들이 개인적인 얘기가 아니라고 할 때 보면, 그건 진짜로 아주 개인적인 얘기더군요.)

그리고 ‘진정한 친구(A Friend in Deed)’ 편에서는 humor(웃음)를 곁들인 sarcasm이 선보인다. 평생 뻔질나게 감옥을 드나들어 ‘나랏밥’을 먹고 살아온 살인 혐의자에 대해서 동료 경위가 콜롬보에게 quip한다. “That’s almost 30 years of state hospitality, give or take a few vacations on the outside.”(바깥에서 보낸 몇 차례 휴가를 제외하면, 국가로부터 후한 대접을 거의 30년이나 받은 셈이라고 하겠죠.)

state hospitality는 “나라에서 (밥도 먹여주고 잠까지 재워주며) 고맙게도 베풀어준 형무소 생활”이다. 우리말로 곁말을 하자면 “형무소밥을 그야말로 밥 먹듯 했다”는 소리다. give or take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여론조사를 하면서 흔히 “플러스 마이너스”라고 표현하는 화법으로, “약간의 첨삭은 있겠지만”이라는 ‘조건부’에 해당된다. vacation(s)은 길고 지루한 일상에서 잠시 갖는 여유의 시간인데, 여기서는 감옥살이가 정상적인 ‘일상’이고 석방된 기간은 ‘잠깐’이라고 빈정거리는 의미를 담는다.

A Friend in Deed라는 제목도 예사롭지가 않다. 이것은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궁할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속담에서 파생되었다. 물론 이 속담에서는 -eed라는 운이 묘미를 준다.그리고 하나의 단어인 부사 indeed(실로, 참으로, 진정으로)를 in deed라고 잘라 놓으면, “행동으로서”라는 부사구로 형태가 바뀐다. 명사 deed가 ‘행위’나 ‘실질적인 행동’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친구’는 리처드 카일리 경찰국장과 살인범이 서로 상대방의 범죄를 ‘행동’으로 도와 교환 살인을 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friend in deed는 “행동에 있어서의 친구”라는 표면적인 의미보다 ‘진정한 친구(friend indeed)’를 겨냥한 cynicis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