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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마케팅/네트웍 마케팅

하이리빙 탄생의 역사

진로의 성장


소주 하면 연상될 만큼 서민적 체취가 강한 진로는 창업 80년 만에 법정관리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소주를 주력 사업으로 해온 덕에 외형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았던 진로가 기업으로써 처음 뿌리를 내린 것은 1920년대였다. 1924년 장진호 전 회장의 부친인 고 장학엽씨가 평남 용강에서 진천양조상회를 연 것이 현재 진로의 모태가 되었고, 그 후 진로는 소주사업에 전념하며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서광주조․진로주조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75년에 사명을 현재의 (주)진로로 바꿨다. 소주사업에 전념하는 과정에서 삼학소주등과 사운을 건 경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 이후부턴 철옹성을 구축, 비교적 손쉬운 장사를 해왔다. 실제로 진로소주는 80년대 후반까지 현금을 줘야 사는 말 그대로 ‘배짱장사’여서 특별한 영업력이 없어도 될 정도였다.


부실의 시작 → 지나친 팽창과 확대


경영권을 둘러싸고 형제들과의 다툼이 벌어지며 한 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소주사업의 견고한 성장을 바탕으로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해올 수 있었다. 진로가 부실의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부터라고 할 수 있다. 88년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른 장진호 전 회장은 이듬해 서울 서초동 본사 부근에 아크리스 백화점을 열면서 종합유통산업에 뛰어들었고 곧 이어 주택건설․전자․기계․금융․레저 등으로 사업영역을 급속히 넓혀갔다. 그 결과 장회장 취임 당시 5개에 불과하던 계열사 수가 90년대 초에는 30개 가까이로 늘어날 만큼 진로그룹 외형이 급팽창했다.

지나친 사업확장은 계속되었다. 장 전회장의 선친인 장학엽 창업주가 85년 4월 타계할 당시 진로는 주류 전문회사로 병제조업체인 진로유리, 주정 제조업체인 진로식품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었다. 주류 말고는 의류업체인 (주)서광이 유일했다. 장 전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진로를 그룹체제로 전환했다. 주류 관련 사업 외에도 식음료․유통․제약․전선․금융․해외사업․뉴미디어사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하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장 전회장은 대대적인 영토확장에 나선다. 80년대 후반에만 진로위스키․ 진로종합유통․ 청주 진로백화점․ 진로제약․ 진로건설 등을 새로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90년대 들어 장회장의 사업 확장은 더욱 왕성하게 이루어져서 진로 쿠어스맥주․ 편의점업체인 진로베스토아․ 진로종합식품․ 진로인더스트리즈․ 여성전문 케이블 텔레비전인 G-Tv 다단계 판매회사인 진로 하이리빙․ 진로 지리산샘물등이 모두 이 기간 동안 새 식구가 됐다. 8년만에 계열사는 5개에서 60개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주)진로

민족의 술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진로는 1924년 순수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회사로서 현재 동남아시아, 일본, 미국, 유럽등에서 소주와 매실주, 인삼주등을 수출하고 있으며 92년 600만 달러에 이어 99년 7천만 달러등을 목표로 세우고 지속적 성장을 거듭해온 회사다.단일 주종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진로 이천공장은 1일 300만병의 진로소주를 생산, 공급하고 있으며, 세계 5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70년 이후부터 지속적인 성장을 해온 진로는 주류 사업뿐만 아니라 유통, 식품, 교통, 건설등 계열사를 꾸준히 확장했으며, 1990년 초에 재계 20위안에 드는 기업으로 발돋움 했으나. 무리한 기업확장과 90년대 중반이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대선 비자금 문제”, “IMF한파”등으로 인해 많은 계열사를 축소, 매각하여 현재에는 주류사업인 (주)진로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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