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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Useful Expression

오바마 화법-안정효 선생님의 Q-English

[안정효의 Q-English]취임 연설문을 통해 본 오바마 화법 下
경향신문
  • ㆍ시적 운율·은유… 대중 홀리는 ‘언어의 연금술’

    여러 차례 텔레비전에서 반복하여 방영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락 오바마가 찬조연설을 하는 동안 대부분 백인이었던 청중이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신들린 듯 귀를 기울이던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80%라는 기록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취임하는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여들어 영하 7도의 추위 속에서 한나절을 기다리던 200만 국민의 표정 또한 무엇엔가 홀린 듯했다.

    그렇다. 오바마의 연설은, 비록 다국적(pluribus) 성장 경험과 빈민가 봉사활동 체험에 바탕을 두어 그 주제와 내용이 진솔하기도 하지만, 무당이나 교주의 설교처럼 사람들을 최면시키는 힘도 발휘한다. 변호사 미셸은 community organizer(공동체 조직자)로 활동하던 버락 오바마가 어느 교회의 지하실에서 하는 연설을 처음 들었던 순간의 감동을 이렇게 단정적으로 표현했다.

    “That was it. I was in love with him.”(거기서 끝난 거예요. 난 그를 사랑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왜 미국은 ‘무당’의 말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오바마의 연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학적 특징은 절묘한 반복의 율동이다. 그것은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옛 기법으로서, 민중을 선동하던 광장정치의 수사학이었으며, 아직도 건재하는 고전적 화법이다. 대중 집회에서 외치는 연호와 구호, 군가의 후렴이 유도하는 최면 상태, 오바마는 그 반복 기법의 명수다. 전당대회에서 그가 한 말을 들어보라.

I say to you tonight: we have more work to do.

More to do for the workers I met in Galesburg, Illinois(이하 생략)

More to do for the father I met who was losing his job(이하 생략)

More to do for the young woman in East St. Louis(이하 생략)

“내가 만난 일리노이 주 게일스버그의 근로자들, 내가 만난 실직을 앞둔 아버지, 내가 만난 이스트 세인트 루이스의 젊은 여인을 위해 우리들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나는 오늘밤 여러분에게 밝힙니다”라는 평범한 말을 그는 여러 문장에서 똑같은 말로 나란히 시작하여 시적인 율동을 만들어낸다.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민족을 강조할 때도 그는 역시 반복 기법을 동원한다.

…alongside our famous individualism, there’s another ingredient in the American saga. A belief that we are connected as one people. If there’s a child on the south side of Chicago who can’t read, that matters to me, even if it’s not my child. If there’s a senior citizen somewhere who can’t pay for her prescription and has to choose between medicine and the rent, that makes my life poorer, even if it’s not my grandmother. If there’s an Arab American family…

(우리의 유명한 개인주의와 더불어, 미국의 웅대한 얘기에는 또 다른 요소가 건재합니다. 우리들이 하나의 국민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그것입니다. 만일 시카고의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가 산다면, 비록 내 아이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나는 걱정을 합니다. 만일 처방약을 살 돈이 없어서, 약을 사느냐 아니면 방세를 내야 하느냐 양자택일을 해야 할 노인이 어딘가에 산다면, 그 여인이 비록 나의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내 삶은 그만큼 더 궁핍해질 것입니다. 만일 어느 아랍계 미국인 가족이…)

문학에 대한 소양을 어느 정도 갖춘 사람이라면 위 발췌문을 읽으면서 행간에 숨은 두 가지 기호를 읽어낸다. 그 하나는 인류 전체를 한 권의 책이나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한 존 던의 시요, 다른 하나는 미국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톰 조드(Tom Joad)가 이 세상 어디에서라도 무슨 부당한 일이 벌어지면 “I will be there(나 그곳에 가리라)”라고 한 선언이다.

반복하여 시적인 율동으로 강조하는 기법은 그의 연설문 곳곳에 나타나고, 취임연설에서는 같은 문장 안에서 반복되는 율동도 돋보인다.

So it has been; so it must be with this generation of America.
(과거에는 그러했으며, 지금 세대의 아메리카도 그러해야 합니다.)

All this we can do. All this we will do.
(이 모든 일을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우리는 해낼 것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소유격 대명사 하나만 가지고도 오바마는 똑같은 효과를 낸다.

Our nation is at war…(우리 국민은 전쟁에 임했고)

Our economy is badly weakened…(우리 경제는 심하게 악화되었고)

Our health care is too costly…(우리 보건 정책은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가고)

더 세부적으로 오바마 문장들을 살펴보면, 반복의 장단을 격상시킨 각운(脚韻, rhyme)도 적지 않으니,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 그러하다.

…war must be an option, but it should never be the first option.
(전쟁은 선택해야 할 가능성이지만, 그것은 제1의 선택이어서는 안 됩니다.)

The pundits like to slice -and-dice our country…
(박식한 분들은 우리나라를 토막토막 잘라내기를 좋아해서…)

I stand here today humbled by the task before us, grate ful for the trust you’ve bestowed, mind ful of the sacrifices borne by our ancestors.
(여러분이 베풀어준 믿음을 감사하면서, 우리 조상들이 치러야 했던 희생을 상기하면서, 우리들 앞에 산적한 과제로 인하여 겸허해진 마음으로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the selflessness of workers who would rather cut their hours than see a friend lose their job which sees us through our darkest hours.
(차라리 그들의 근무시간을 줄이더라도 동료가 직장을 잃지 않도록 하려는 근로자들의 희생정신은 우리들이 처한 가장 암울한 시절을 헤쳐 나가게 도와주고…)

마지막 예문을 보면 hours라는 단어가 두 가지 다른 뜻으로 쓰여서 곁말(pun)을 이루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오바마는 “~와 같은”이라고 강제로 엮어놓는 as나 like를 앞세운 simile(直喩)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the doors of opportunity(기회의 문)나 a road to opportunity(기회를 찾아가는 길)처럼 imagery(心像)로 상상력을 자극하여 훨씬 가시적으로 밀착해오는 metaphor(隱喩)를 자주 활용한다. 취임연설의 모두(冒頭)에 나오는 대목이 그런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The words have been spoken during rising tides of prosperity and the still waters of peace. Yet, every so often, the oath is taken amidst gathering clouds and raging storms.
(번영의 밀물과 평화의 고요함 속에서도 선서는 이루어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먹구름이 몰려들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속에서 선서가 이루어진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오바마의 주제인 통합과 단결의 개념에서 한 겹 껍질을 벗겨보면 ‘변화’의 좌표가 보인다. 그 변화는 과거를 쓸어버리고 퇴화하는 청산이 아니라 포용하고 진화하는 발전의 모습을 취한다. 이러한 발전의 변화를 표현하는 화법으로 오바마가 선택한 문체는 대비(contrast)와 균형(symmetry)의 병존이다.

2004년 찬조연설에서 “There are patriots who opposed the war in Iraq and patriots who supported it”(이라크 전쟁을 반대한 애국자도 있고 지지한 애국자도 있다)이라고 그가 한 말은 “아무리 미워도 애국자는 애국자”라는 논리, 적을 포용하려는 인식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취임연설에서 그는 또한 문장의 구조에서도 이런 균형을 과시한다.

On this day, we gather because we have chosen hope over fear, unity of purpose over conflict and discord. On this day, we come to proclaim an end to the petty grievances and false promises, the recriminations and worn-out dogmas that for far too long have strangled our politics.
(오늘 우리가 이곳에 모인 까닭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을, 갈등과 불화가 아니라 통일된 목적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정치를 너무나 오래 질식시켜 온 낡아빠진 독선과 반발을, 유치한 불평과 거짓된 약속을 종식시키겠다고 선언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낡음과 새로움을 그는 이렇게 대비시키며 함께 강조했다.

Our challenges may be new. The instruments with which we meet them may be new. But those values upon which our success depends ―honesty and hard work, courage and fair play, tolerance and curiosity, loyalty and patriotism ―these things are old.
(우리의 도전들은 새로울지 모릅니다. 그 도전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동원하는 수단들도 새로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치관 ―정직성과 노력, 용기와 공정함, 아량과 탐구심, 충성과 애국심 ― 이런 것들은 낡았습니다.)

태평양 저 건너편 다른 나라에서, 흑인 대통령이 이렇게 연설을 하는 동안 나는, 새벽 3시가 넘도록 취임식 생방송을 지켜보면서, 여의도의 정치 조폭들을 생각했고, 상대방이 하려는 일은 무작정 발목부터 잡고 자신이 하려는 일만큼은 무작정 강행처리하려고 쇠사슬과 전기톱을 휘둘러대는 그들이 파괴할 우리 민족의 참담한 미래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