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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번역작품

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할까-역자후기



<역자후기> 

너무 똑똑해서 탈인 시대에.


똑똑함과 멍청함에서 비롯되는 아이러니는 인류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로 보인다. 무조건 똑똑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멍청하고 어리석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사회에서 소외시키는 편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편견은 똑똑한 사람은 언제나 똑똑한 행동만 할 것이라는 막연한 통념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봐도 어떠한 영역에서든 똑똑한 사람들이 핵심이 되어 변화와 발전을 주도하였다. 반면에 작은 공동체나 집단을 비롯하여 한 국가, 혹은 심지어 전 세계를 파멸과 비극으로 몰고 간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의 당사자들 역시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똑똑한 이들의 멍청한 짓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고통 속으로 내몰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똑똑하고 유능하며 성공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거나 멍청함을 경계하는 내용의 글은 많았지만, 이 책처럼 인간의 멍청함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학문적으로 접근한 시도는 별로 없었던 듯하다. 더욱이 멍청함의 원인과 이유를 규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사람의 내면과 의식을 들여다봐야 하는 난해한 과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체계적인 이론적 틀 아래에서 과학적 해법을 제시하며 멍청함의 모순을 푸는 최초의 시도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헛똑똑이’라는 말이 긍정적인 맥락에서든 부정적인 맥락에서든 일상생활에서 많이 등장하듯, 똑똑함과 멍청함의 역설적 관계는 우리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똑똑함과 멍청함 사이에는 극과 극의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그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은 어쩌면 백짓장 한 장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능력이 최고라는 생각, 자신만이 최고로 똑똑하다는 아집의 독에 갇혀 경직된 태도를 가지면 평생 멍청함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마음을 조금만 움직여서 거기에서 벗어나면 똑똑하고 현명하며 조화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예일대 PACE센터의 소장이며 2003년 미국심리학회(APA) 회장으로 선출된 바 있는 예일대 심리학교수 로버트 스턴버그를 비롯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저명한 심리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미 국내에 여러 권의 저서가 소개되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자들이 독자들에게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들은 인지심리학, 과학적 심리학, 응용심리학, 교육심리학 등에서 가져온 이론을 도구로 인간의 똑똑함과 능력, 지능 그리고 그 대척점에 있는 멍청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분석을 시도한다.


발달심리를 연구하는 드웩, <마음 챙김>이라는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낸 랭거, 유아의 욕구충족지연에 관한 마시멜로 연구로 유명한 미쉘, 전통적 심리학의 오해를 깨뜨린 스타노비치 등은 우리나라에 이미 잘 알려진 학자들이다. 성격심리를 연구하는 에이덕, 역시 성격특질을 연구하는 디어리, 초심리학 분야의 연구자 헤이먼, 경영학에 심리학을 접목하는 몰도비아누, 학교 교육에 심리학을 접목하는 퍼킨스, 인지심리학자 스타노비치와 헬펀 등은 우리나라에 저서가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모두 미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발달심리를 연구하는 그리고렌코는 PACE센터의 부소장으로서 스턴버그와 많은 공저를 냈으며, 로커리는 PACE 센터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집필진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이들은 실용적․과학적 방법으로 심리학에 접근하여 일반인이나 경영자들에게 능력을 키우는 법을 알려주고 학교교육을 개선하고자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 미국에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어리석은 추문(1998년 클린턴 르윈스키 스캔들)에 휩싸인 경악스러운 사건을 세계는 접하게 된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미국 내에서는 법조계의 본보기이며 도덕적 지혜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던 뉴욕 주 수석 판사가 변심한 애인에게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된 사건이 발생한다. 이밖에도 똑똑하고 유능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저지르는 반사회적이거나 어리석은 행동들이 신문지상을 이따금 장식했다. 정말 똑똑한 이들이 왜 그리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까가 궁금해 질만 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집필을 하면서 심리학자들은 우선 똑똑함을 지능과 동일시하는 통념적 시각에 합의하면서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멍청함에 대한 학문적 분석의 잣대를 가져왔다. 이들이 제시한 이론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똑똑함은 지능이나 능력이 전부라는 신념에서 벗어난 사회적 적응성, 공동체 의식이 바탕이 된 도덕심, 정서 지능적 행동, 마음집중 등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멍청함은 지능과 능력이 전부라는 신념, 성격장애로 인한 사회적 부적응성,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하는 독선, 정서 지능의 결여, 마음분산의 행동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상대와 내가 가진 분석의 틀이 달라서 발견되는 현상에 멍청함이라는 낙인을 찍기도 했다.


한정된 지능, 본능과 습성으로 인해 멍청한 짓을 되풀이하는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자기통제와 자기규제를 통해 멍청한 짓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인류 역사에 크나큰 업적을 남긴 위인들이 대부분 대단한 지능이나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기는커녕 일반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염두에 둬야 한다. 이들이 이룬 업적의 원천은 바로 열정과 노력이었다. 똑똑함을 발휘하는 방법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으면 되는 것이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 혹은 말도 안 되는 실수에서 벗어나려면 한 번 쯤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에 대해 분석하고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을 곁에 두고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들여다보며 그 어리석음을 없애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방법, 타인의 어리석음을 이해하는 방법, 자기만이 똑똑해야한다는 아집에서 벗어나는 방법, 관용의 마음을 베푸는 방법, 현명해지는 방법을 깨우칠 때 우리는 모두 진정 똑똑해지고 현명해질 수 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서문에서 움베르코 에코도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은 양식(良識)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들조차도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책이 똑똑한 삶을 향한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